땅의 물성으로 자연의 이치를 기록하고자 한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 한국 이름은 '유동룡'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다 보냈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에 긍지를 가진 부모님께 영향을 받아 죽을 때까지 '유동룡' 본명으로 한국 국적을 유지하면서 살았습니다.
도쿄도시대학 건축학과를 다니던 와중 한국 여행을 하며 한국의 고건축, 조선 민화,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이를 수집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이조 민화(1975)”, “이조의 건축(1981)”, “조선의 건축과 문화(1983)”, “한국의 공간(1985)” 등의 책을 발간하기도 하였는데요.
<故유동룡 선생(이타미 준)>
*출처: https://www.metroseoul.co.kr/
그가 프랑스를 시작으로 한국와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들에서 초대형 규모의 수상을 연달아 받으면서부터 한국에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최고 권위의 건축상 '무라노 도고상'을 비롯해 최초로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를 받은 그는 건축물이 세워질 장소의 고유한 지역성을 살려 인간의 삶에 어우러지는 건축물을 추구하였습니다.
이타미준은 “내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건축을 매개로서 자연과 인간 사이에 드러나는 세계. 즉, 새로운 세계를 보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건축, 손과 몸의 온기가 묻어있는 건축, 그 지역의 특성과 재료를 어우러지게 한 건축을 만들어냈습니다. 오늘은 마이다스캐드와 함께 이타미준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01. 온양 박물관(구정아트센터)
(출처 : 네이버 지도)
온양 박물관(구정아트센터)은 한국 마을의 민가에서 모티브를 얻어 현대 산업화에 밀려난 우리나라의 삶을 이뤄온 물적 토대를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층무공의 땅이라는 상징성을 살리기 위해 지붕을 거북선처럼 만들고 아산 일대 풍부한 돌을 활용해 돌담으로 조성한 건축물입니다.
▶ 자연으로부터 받은 원초적 소재
<이타미준의 구정아트센터 외관>
<이타미준의 구정아트센터 스케치>
<위에서 바라본 구정아트센터>
*출처: https://www.asan.go.kr
적벽돌로 만들어진 한국의 민가에서 모티브를 얻은 온양박물관은 현대 산업화에 밀려난 우리나라의 삶을 이뤄온 물적 토대를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하는데요. 주 외벽 재료는 적토와 백회를 7:3 비율로 섞어 현장에서 형틀에 넣어 압축 프레스 하고, 다시 태양에 건조해 흙 블록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쳐 자연으로부터 받은 원초적 소재가 되었습니다.
건물을 지을 당시 여러 민가 중에서도 온양 인근의 외암마을에서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아트센터의 각 요소들은 외암마을의 돌담, 마을 앞의 논과 뒷산, 민가의 황토벽과 초가지붕, 참판댁의 ㅁ자형 가옥구조, 기와가 얹혀있는 행랑채의 전면 등을 떠올리게 끔 하는 모습입니다. 이타미 준은 온양박물관을 ‘흙으로 빚은 조형’이라고 칭하였으며 한국 민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고민과 전통재료의 사용, 지형과의 조화 등이 돋보이는 건축물입니다.
▶ 외부와는 다른 재료와 공간의 내부
<ㅁ자로 감싸고 있는 회랑 내부>
<구정아트센터의 전시장>
*출처: https://terms.naver.com/
<본관 로비>
출처: http://onyangmuseum.or.kr/
외벽의 재료가 향토적인 재료를 모티브로 삼은데 비해 타원형 홀을 낮게 ㅁ자로 감싸고 있는 회랑의 내부는 노출콘크리트와 흰벽으로 이루어진 내외가 완전히 다른 현대적인 모습입니다.
회랑의 입구를 거쳐 원통의 내부 홀로 들어가면 재료와 공간은 또 달라지고 커다란 타원형의 흰벽으로 둘러 싸인 공간 가운데 두 벽돌 원통이 나란히 서 있어 홀을 앞 뒤로 가르고 있는데요.
노출된 목조 트러스 지붕 구조와 아래 위로 긴 창은 작은 교회를 연상시킬 정도로 고전적이고 성스러운 공간적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고 건물 외부와 내부 형태와 다른 재료의 사용은 건물을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전혀 다른 공간을 차례로 마주치게 해 독특한 공간적 체험을 하게 해줍니다.
두 개의 층이 수직으로 연결된 박물관 본관 로비에서는 카페, 뮤지엄 샵이 자리하고 있고 계단을 올라 2층 부터 전시를 돌거나 건물을 입장하자마자 전시실을 돌거나 어느 입구를 택해도 모든 전시실들은 이어져 있기 때문에 3개의 전시실을 모두 돌고 나면 다시 로비로 돌아오게 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02. 방주교회
(출처 : 네이버 지도)
하늘의 움직임을 보고 떠올린 이미지로 하늘과 빛이 달려가는 것 같은 표층을 나타내는 형태를 표현하고 건축물이 잔잔한 물 위에 내려 앉아 있어 한 척의 배 같은 모습으로 방주교회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 하늘과의 조화
<제주 방주교회의 외관>
<물에 떠있는 모습>
*출처: https://www.mk.co.kr/
낮은 언덕, 무성한 나무 사이로는 빛이 새어들며 하늘이 다이나믹하게 흘러가는 그 자리 잔잔한 물 위에 내려 앉은 이 교회는 마치 모진 풍파를 견디며 항해하는 한 척의 배 같은 모습을 자아냅니다. 교회를 둘러싼 인공 연못과 물고기 비늘처럼 표면이 반짝이는 지붕은 햇빛을 사방으로 퍼뜨렸고, 양 옆으로는 바람이 만든 부드러운 물결과 함께 물에 비친 제주도의 파란 하늘이 흐르는게 보여지는데요.
이 하늘의 움직임을 보고 떠올린 이미지로 하늘과 빛이 달려가는 것 같은 표층을 나타내는 형태를 표현한 건축을 만들기로한 이타미준은 최초의 이미지를 물 위에 떠 있는 배와 같은 조형으로 만들 생각이었지만 부지의 지형이나 자연과의 일체감을 고려하고 주변의 언덕이나 하늘을 의식한 조형으로 만들어가면서 현재와 같은 교회의 긴 지붕선 양 끝이 하늘을 향해 올려져 하늘의 건축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이타미준이 하늘과의 조화를 중요시 했기 때문인데요.
하늘과의 조화를 위해 구조의 철골에 각 파이프를 사용하고, 그것을 목재로 감싸 단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합성 소재를 만들어 나무와 유리의 연속적 스트라이프의 벽면은 외부 환경의 빛과 그림자를 내부에 끌어들이며, 내부이면서 마치 외부인 듯한 느낌을 주도록 설계 하였습니다.
▶ 안과 밖의 경계를 명확하게
<물 위를 건너는 모습>
*출처: https://www.mk.co.kr
<예배당으로 가는 길목>
<자연광이 들어오는 예배당 내부>
*출처: http://jejuive17.7581.co.kr/
교회 내부로는 입구로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물 위를 건너야 입구로 도착할 수 있어 안과 밖의 경계를 명확하게 해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느낌을 주도록 설계하였습니다.
교회 내부에는 천장까지 이어진 나무 기둥들 사이로 유리창이 나 있어 예배당 안으로 자연광이 은은하게 들어왔고 어느 자리에서든 제주도의 고즈넉한 자연 풍경이 눈에 담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예배당 앞의 낮고 긴 창이 강단으로 건물 밖 물과 나무, 빛을 끌어온 덕분에 자연 속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요. 굳이 예배당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제주 자연속에 자리 잡은 방주교회 주변을 산책하는 것도 좋으며 본 예배당과 마주보고 있는 올리브 카페도 유명하다고 하니 햇살 좋은 날 카페에 앉아 제주의 하늘을 느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03. 수풍석 박물관
(출처 : 네이버 지도)
수풍석 박물관은 제주도의 으뜸 요소인 물, 바람, 돌을 각각의 테마로 삼고 있는 공간으로 미술품을 전시하는 뮤지엄이기보다 ‘명상의 공간으로서의 뮤지엄’으로써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건축물로 구현되었습니다.
▶ 수(水) 박물관
<수 박물관 외관>
<직사각형의 호수>
<둥근 천장으로 하늘과 빛이 쏟아지는 모습>
*출처: https://waterwindstonemuseum.co.kr
돌담을 지나 세로로 긴 문 사이로 하늘, 벽, 물, 용 모양의 상징물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수 박물관은 새파란 하늘의 날씨와 곁들여 볼 때 탄성을 자아낼 수 밖에 없는 한 폭의 그림입니다.
지붕이 없는 둥근 천장으로 하늘과 빛이 쏟아져 직사각형의 호수 위를 채우고 바람이 파동을 만들고, 명상을 위한 개인적인 공간으로 만든 다른 곳과는 다르게 이곳은 명상을 통해 구체화한 내면 세계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사방이 막힌 공간. 고요한 수면을 보고 있노라면 수(水) 박물관의 물은 자연의 모든 것과 공명하고 있고 해와 바람과 하늘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자신의 표면에서 새로운 공간을 다시 생성해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 풍(風) 박물관
<풍 박물관의 외부>
<판자 사이로 바람 소리가 들린다>
*출처: https://waterwindstonemuseum.co.kr
형태로, 소리로, 분명히 존재할 수 있도록 수풀 사이에 헛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풍 박물관은 적송을 판으로 이어 바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완공 직후에는 적송의 붉은색을 띠었지만, 세월이 지나 지금은 건물에 중후한 맛을 더해주는 짙은 고동색으로 변하였습니다. 얼핏 봤을 때에는 직사각형으로 보이지만 한쪽은 직선, 반대쪽은 곡선으로 휘어진 모양이며 이것은 바람의 소리가 잘 들리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전달해주는데요.
이곳에 서 있으면 판자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바람의 노랫소리로 바람이 이 건축물에 계속 머무르고 있고 감지될 수 있도록 알려주고 있습니다.
▶ 석(石) 박물관
<석 박물관의 외부>
<석 박물관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석 박물관에 비친 제주도의 노을>
*출처: https://waterwindstonemuseum.co.kr
산화 강판으로 만든 석(石) 박물관은 빨갛게 녹이 슨 직사각형의 모습으로 위치하고 있는 석(石) 박물관은 멀리서 보면 마치 무심히 놓여진 돌덩어리 같습니다.
황색을 띠던 외벽이 시간이 흘러 붉은색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제주도의 비와 바람을 맞고 자연스럽게 색이 변하도록 의도한 것인데요. 어둠이 드리운 텅 빈 내부에는 오직 창과 돌만이 존재하고 천장에 뚫린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시간에 따라 모양과 밝기를 달리해 내부를 비춰줍니다.
동그란 창을 통해 햇빛이 어둠 한가운데 오롯이 들어앉으면 그곳의 고요는 결코 쓸쓸하지 않으며 오히려 다정하다라는 느낌을 들게 해줍니다. 정오에는 정확하게 빛이 바닥에 놓인 돌 가운데를 통과하고 시간에 맞춰 다른 각도로 빛을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04. 포도호텔
(출처 : 네이버 지도)
포도호텔은 제주도의 오름과 초가집에서 영감을 받은 호텔로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지붕이 마치 한송이의 포도모양 같은데 포도 알처럼 개별적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특징인 건축물입니다.
▶ 제주도 민가 곡선을 지붕으로 재현
<마치 한송이의 포도 같은 지붕 모습>
<제주도 오름에서 영감 받은 외관>
<제주 초가와 비슷한 모습의 지붕>
*출처: https://podo.thepinx.co.kr/
<제주도의 초가 모습>
*출처: www.newsje.com/
제주도의 오름과 초가집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이 호텔은 멀리서보면 제주도의 오름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친화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포도호텔’이라는 이름은, 이 호텔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지붕이 마치 한송이의 포도모양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합니다. 포도알처럼 개별적으로 나누어져 있는 호텔은 제주 초가의 형식인 두거리, 세거리 형식과 유사하게 만들어졌고 지붕의 형식과 재료 마저도 제주 초가와 비슷한 점이 많은데요.
지어진지 어느덧 20여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변함없는 제주 민가의 아름다움을 곡선의 지붕으로 재현해 포도송이처럼 엮은 스무 여섯 개의 객실은 그 안에 고요히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자연 밖을 거니는 것 마냥 비슷한 감도와 고유의 풍성함을 안겨주는 공간입니다.
▶ 자연을 향한 ‘열림’과 ‘닫힘’
<빛의 움직임과 계절의 변화가 흘러드는 내부>
<한옥의 서까래를 은유한 천장>
*출처: https://podo.thepinx.co.kr/
<한옥 서까래 모습>
*출처: www.ohmynews.com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원형의 케스케이드>
*출처: https://podo.thepinx.co.kr/
내부 곳곳에 하늘과 밖을 향한 캐스케이드와 창, 테라스를 '열림'을 통해 하나의 포도송이로 연결되게끔 설계하였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빛의 움직임과 계절의 변화가 자연스레 흘러드는 자연과 호흡하는 공간이며 자연을 향한 열림과 닫힘이 서로 반복되고 교차되면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제주 자연의 흐름과 변화를 공간 내부로 깊숙이 끌어 들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로비를 지나 객실에 들어서는 과정은 마을의 큰길에서 올레를 거쳐 마당을 지나 집으로 걸어 들어가는 경험으로 포개어 지는데 입구에서 바라보면 닫혀 있는 듯 보이지만, 걷다보면 다른 풍경을 마주하듯 서서히 변화하는 느낌을 자아 냅니다.
천장은 한옥의 서까래를 은유해 안으로 걸어갈수록 높아지다 빛을 들이는 가장 높은 천장에서 낮아지며 열림과 닫힘을 표현하고, 그 아래 전통적 패턴의 차폐의 창은 보이지 않는 문이 있음을 알려주는데요.
포도호텔의 중심에는 케스케이드의 원통이 바깥 공기를 안쪽으로 들여주고 제주 제철의 식물들을 때에 따라 심어두어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고 이 원형에서는 안개가 끼면 안개가 가득 차고, 눈이 오면 눈이 소복히 쌓이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건축, 손과 몸의 온기가 묻어있는 건축, 그 지역의 특성과 재료를 어우러지게 한 건축을 만들고자 건축가 이타미 준의 건축물을 알아보았습니다.
온양 인근의 마을에서 영향을 받아 적벽돌로 지은 온양박물관(구정아트센터)부터 제주도 오름과 초가집에서 영감을 받아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한 송이의 포도송이 같은 포도 호텔까지 공통적으로 이타미 준이 추구하는 땅의 물성으로 자연의 이치를 기록하고자 했던 건축물들이었는데요.
앞으로 이타미 준이 남긴 건축물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연에 돌아가는지 지켜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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