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TV나 뉴스를 통해 놀라운 범죄소식을 매일 같이 접하곤 합니다. 각국 정부와 경찰은 범죄를 막기 위해 지금까지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었고, 범죄학자들은 사전적(事前的)으로 범죄의 원인을 연구해서 예방책을 내놓곤 했지만 범죄는 줄지 않았죠. 1960년대에 미국 정부에서 범죄가 발생하는 장소를 사후적으로 조사한 결과, 물리적 환경(도시의 건축물 상태, 노후 정도, 이용이 적은 공간 등 도시·건축설계 및 관리 상태)이 범죄와 상관관계가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전체 범죄의 발생비 추이(2005~2014년) <출처: 대검찰청 「2015 범죄분석」. p4.>
이러한 통계조사를 토대로 학자들은 건축디자인을 통한 범죄예방기법을 제안하였으며, 이를 범죄예방설계 혹은 셉테드(CPTED,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라고 부릅니다.
1940~1950년대에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자 주 정부는 공공주택을 건설하기로 하고 일본계 건축가 미노루 야마자키에게 설계를 의뢰합니다. 야마자키는 행복한 공동주거 공간을 구상한 끝에, 당시로서는 최신 기술로 프루이트 아이고(Pruitt-Igoe) 아파트 단지를 설계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파트 단지에서는 반달리즘(vandalism)이 나타났고, 이후 폭력과 마약 등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되고 맙니다. 결국 주 정부는 1976년에 아파트 단지를 폭파하기에 이르죠.
2. 건축 당시 프루이트 아이고 아파트 단지의 전경 <출처: Wikimedia Commons>
2. 우범지대로 변한 아파트를 붕괴시키는 장면 <출처: Wikimedia Commons>
프루이트 아이고 아파트 단지의 폭파는 건축가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는 일련의 사건이었는데, 특히 미국 뉴욕대의 뉴먼(Oscar Newman)은 아파트 단지에서의 범죄발생이 심각해지는 것에 주목해서 방어공간이론(Defensible space theory, 1972)을 정립합니다. 방어공간은 영역성과 자연감시, 지역 이미지, 안전한 지역에 인접한 위치 등의 4가지 조건을 통해서 형성된다는 것이죠. 방어공간이론은 물리적 특성으로 범죄가 예방된다는 극단적 견해로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후 CPTED 이론이 정립됩니다.
방어공간의 영역성 개념을 설계에 적용한 사례 Ⓒ이재인
방어공간은 1972년 미국에서 이론으로 정립되었지만, 12세기경에 건축된 중국 객가(客 家)인들의 전통적인 공동주거지인 토루(土 樓)는 방어공간의 역사적 실증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CPTED라는 용어가 처음 거론된 것은 1980년대 올림픽을 준비하던 때였지만, 본격적인 논의는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서울시에서 2013년 범죄예방설계 가이드라인을 제정했고, 이후 2014년에는 범죄를 예방하고 안전한 생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건축법」에 도입되어서 건축물, 건축설비 및 대지에 관한 범죄예방기준이 고시되었습니다(「건축법」 제53조의 25)).
건축물의 범죄예방기준을 의무적으로 적용하여 설계해야 하는 건축물의 용도는 ① 500세대 이상인 아파트, ② 일용품을 판매하는 소매점(제1종 근생), ③ 다중생활시설(제2종 근생 및 숙박시설), ④ 문화 및 집회시설(동·식물원은 제외), ⑤ 교육연구시설(연구소 및 도서관은 제외), ⑥ 노유자시설, ⑦ 수련시설, ⑧ 업무시설 중 오피스텔 등이 있습니다(「건축법 시행령」 제61조의3).
건축물의 범죄예방기준을 의무적으로 적용하여 설계해야 하는 해당 건축물은 국토부에서 고시하는 「범죄예방건축기준」에 맞추어 설계를 해야 합니다.
CPTED는 적절한 건축설계나 도시계획 등을 통해 대상 지역의 방어적 공간특성을 높여 범죄발생 가능성을 줄이고, 지역 주민들이 안전감을 느끼도록 하여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종합적인 범죄예방전략입니다. CPTED는 감시와 접근통제, 영역성 강화 및 유지관리를 기본 원리로 하지요. 여기서 감시와 접근통제, 영역성 강화는 건축디자인 초기 단계의 계획요소인 반면, 유지관리는 건물의 사후적 요소로, 깨진 유리창 이론은 공간환경과 범죄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보여줍니다.
2. 건축물 유지관리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깨진 유리창’ 이론 <출처: (CC BY-SA) Spitzruten @Wikimedia Commons>
따라서 「범죄예방 건축기준」은 내용적으로 범죄예방디자인 개념과 기본 원리에 초점을 맞추어 규정하고 있고, 형식적으로는 공통기준과 건축물의 용도별 기준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공통기준은 접근통제의 기준, 영역성 확보의 기준, 활동의 활성화 기준, 조경기준, 조명기준 및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안내판의 설치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건축물의 용도별 범죄예방기준은 ① 아파트, ② 단독주택(다가구주택 포함), 다세대주택, 연립주택 및 아파트(500 세대 미만), ③ 문화 및 집회시설·교육연구시설·노유자시설·수련시설·오피스텔, ④ 일용품 소매점(24시간 편의점 등), ⑤ 다중생활시설(고시원 등) 등으로 구분됩니다.「건축법」에 도입된 범죄예방설계는 과거 「건축법」이 건축위험을 주로 화재에 집중하여 규정한 것에 비해, 건축위험의 범위를 확장하는 의미를 갖는 것과 동시에 범죄피해에 대해 건축주와 시설관리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로서의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글, 이미지 출처 : '그림으로 이해하는 건축법' >
본 내용은 2016년 기준으로 작성된 ‘그림으로 이해하는 건축법’의 내용을 수록한 것으로 법령 개정에 따라 일부 수정했음에도 일부 규정과 상이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각 법령 및 지침의 정확한 내용은 국가법령센터에서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law.go.kr) 또한 현황 법령에서 규정되어 있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 유추해석 된 부분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