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로 미국 NASA의 ‘오늘의 천체사진(Astronomy Picture of the Day)’에 선정된 천체사진가 권오철 씨의 삶을 바꾼 건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이라는 책 한 권이었다. “고교 시절 어느 날, 친구가 보던 이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기억에 남는 만남은 대개 우연에서 시작됩니다. 어느 날 문득 스친 인연이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합니다. 예측 불가능성, 바로 우리네 삶의 묘미죠.
2021 한국건축산업대전 우수상 수상작 구미시립양포도서관 진입로
구미 시립 양포 도서관
2021 한국건축산업대전 우수상 수상작 ‘구미시립양포도서관’을 설계한 임태형 건축사(건축사사무소 플랜)는 이 예측할 수 없는 우연한 만남에 주목했습니다.
도서관은 구미 양포지구 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인구 5만에서 7만을 수용하는 규모의 이 도시는 여느 택지개발지구가 그렇듯이 민간 자본에 의한 상업건축과 공동주택 일변도인 무색무취의 풍경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도시민들은 이 도서관을 통해 일상 속에서 새로운 경험의 순간을 누리고 있습니다.
◆ 우연히 만나는 도서관
2021 한국건축산업대전 우수상 수상작 ‘구미시립양포도서관’ 외관
보통 건축물의 진입로는 접근의 효율성을 중시합니다. 바쁜 현대인의 일상에서 ‘그냥’ 보내는 시간이란 사치이기 때문입니다. 인근 주민에게 책을 빌려주고 학습공간도 제공하는 대부분의 공공도서관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용객들은 도서 대여나 반납, 시험 준비 등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도서관을 찾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려 노력합니다.
구미시립양포도서관에 이르는 길은 다릅니다. ‘마을길’이라고 명명한 이곳 외부 진입로의 역할은 우리를 도서관에 가장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에 그치지 않습니다. 위치 상 이 길은 남측 상업지역과 서측 주거지역의 가교 역할을 하는데, 설계자는 이 길을 지나다 문득 도서관으로 접어들어 책을 펼치는 모습을 상상하며 이곳을 설계했습니다.
임 건축사는 “다른 도서관과는 달리, 양포도서관은 안팎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를 원했다. 시민들이 누구라도 자유롭게 배회하고, 때로는 빠른 지름길이 되고, 문득 발길을 따라 예정에 없이도 도서관을 만날 수 있는 우연을 유발하는 생활 속의 열린 공간으로 자리잡기를 바랐다”고 말했습니다.
이 길로 인해 주민들은 좀 더 가까운 도서관을 만나게 되고 여러 가지 목적과 행태의 생활 동선이 수용되는 새로운 보행체계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외부 공간에서 나타나는 움푹 꺼진 큰 정원, 여유롭게 늘어진 경사로, 자유롭게 배치된 식재들, 걸터앉기 넉넉한 스탠드형 계단과 그늘진 외부마당의 요소들은 도서관과 도로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며 더욱 개방적이고 친근한 외부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 일부러 경계 명확히 하지 않아…자연스러운 교감의 장 만들어
구미시립양포도서관 지하1층
심사위원들은 “최근까지 우리의 책읽기는 경직되어 있고 이를 반영하듯 많은 지역의 공공도서관은 기능에 충실한 공간구조를 선호하여 왔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건축사는 책 읽는 방법에 의문을 제기하고 길의 형성과정을 통해 새로운 해석을 던지고 있다”면서 “입면 처리는 도서관과 길이 중첩된 지점에서 상하부를 관통하는 비워짐을 강조하는데 도서관의 상하좌우가 온전하게 관통되는 이 비워진 곳에서 다양한 높낮이에 위치한 도서관 이용객과 산책하는 시민들은 서로 시각적으로 교감하게 되고, 도서관이 만들어 내는 공간의 깊이감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다”고 평했습니다.
임태형 건축사의 일문일답
임태형 건축사(건축사사무소 플랜)
▶ 수상 축하드립니다. 수상작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십시오.
2016년 설계공모 당선작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전 수행한 프로젝트라서 작업의 질적으로는 아쉬움이 있지만 나름의 성취가 있었기에 이 부분이 평가를 받은 듯합니다.
▶ 건축설계를 시작하면서 가진 건축적 지향점이 있다면?
설계자가 공공시설을 계획할 때 이용자가 불특정 다수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대부분의 공공시설들은 규모와 입지의 특성상 도시 콘텍스트의 일부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좀 더 넓은 시야로 바라봐야 합니다.
가령 건축물이 들어서는 부지의 경계가 명확한 장소에서는 건축물을 직접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배타적으로 보여 지게 되고 서로 나뉘고 고립되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단순히 담장을 설치하지 않는다거나 낮은 경계처리, 또는 조경의 배치는 결국 보이지 않을 뿐 여전히 경계를 상기시키게 됩니다. 경계를 불식시킬 적극적인 건축적 전략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저희는 네 개의 도서관 프로젝트에서 이러한 관점을 유지하며 설계를 진행해 왔습니다.
▶ 그 지향점을 이번 작품에 잘 반영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구미도서관의 ‘마을길’이라고 명명한 외부 진입로는 남측 상업지역과 서측 주거지역의 가교 역할을 합니다. 중간 부분에서는 도서관의 부출입구가 위치하고 외부에서 북카페로 바로 진입이 가능하도록 하였고 아래층 어린이 도서관의 지붕이 마당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저희가 의도 했던 건축적 상황은 이 길이 반드시 도서관 이용자들만 이용하는 길이 아니라 시민들이 누구라도 자유롭게 배회하고, 때로는 빠른 지름길이 되고, 문득 도서관을 만날 수 있는 우연을 유발하는 생활 속의 열린 공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준공 이후에도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그 의도가 잘 구현된 모습을 보았고, 심사평에서도 이러한 의도를 잘 해석해 주신듯합니다.
▶ 근래 들어 관심을 두고 있거나 설계에 적용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주택에 있어서 ‘방’이라는 공간의 다양한 변주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침실, 공부방, 쉬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는데 그동안 이 공간에 대한 건축적 해법이 상투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두, 세 개의 방이 각각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행태 중심으로 공간 규정해서 설계하고 있는 집이 있는데 이 집은 집의 생애주기나 동선의 관점으로 보면 분명 기존의 집들과 다르게 해석될 특징들이 존재합니다.
출처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http://www.ancnews.kr)
해당 게시글이 유익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