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현대백화점에서 동교동삼거리에 이르는 1킬로미터 정도의 길을 기자와 친구들은 이렇게 불렀습니다. '신촌에서 홍대 넘어가는 길'.
1990년대 서울 서북부 지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학생이라면 이 길이 낯설지 않을 겁니다. 서대문구 창천동과 마포구 동교동 경계에 위치한 이 길을 걸으며 만든 추억들도 하나 둘씩 있을 정도죠.
그 당시 가장 붐비던 청년 문화의 중심. 지금은 4050이 된 이들이 잊지 못할 그 공간에 얼마 전 ‘저건 뭐지?’할 만한 건축물이 들어섰습니다. 이름은 ‘더 브레이스(The Brace)’. 이 지역 소재 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쳐 역시 이곳 풍경에 익숙한 한지영 건축사(라이프 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해 지어졌습니다.
2021 한국건축문화대상 신진건축사부문 우수상 수상작 더 브레이스 (사진=라이프건축사사무소)
더 브레이스
창천동삼거리 홍대입구 방향, 보통 ‘빌딩’하면 떠올리는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들 사이에 갑작스러운 부딪침처럼 좁고 긴 건물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더 브레이스 외관 (사진=라이프건축사사무소)
창천동삼거리 홍대입구 방향, 보통 ‘빌딩’하면 떠올리는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들 사이에 갑작스러운 부딪침처럼 좁고 긴 건물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브레이스’란 기둥의 상부와 다른 기둥 하부를 대각선으로 잇는 경사재를 뜻합니다. 지진, 태풍 등의 수평외력에 견디고, 변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설치합니다. 우리말로는 ‘가새’라고 한다. 건축물 이름은 좁은 대지와 충분한 용적률이라는 조건을 풀다가 얻어낸 결과입니다.
더 브레이스 외관 (사진=라이프건축사사무소)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땅은 132제곱미터 정도로 작았던 반면 용적률은 높아 건축물을 높이 짓는 것은 가능했습니다. “좁지만 높게.” 설계자 한지영 건축사에게 놓인 선택지는 이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땅이 좁고 건축물의 높이가 높아지면 횡력이 취약해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구조상 취약점을 보강하기 위해서는 기둥을 크게 세워야 했는데 그렇게 되면 좁은 건축물이 더 좁아지게 됩니다.
고민 끝에 기둥을 가새 형식으로 만들고 바깥으로 빼서 외피의 역할도 하게 하자는 아이디어에 이르렀습니다. 주어진 한계를 극복할 방법으로 고민했던 ‘가새’가 건축물 자체를 상징하는 디자인이 된 것입니다.
더 브레이스 3D 모형 (사진=라이프건축사사무소)
1층에서 시작된 가새가 최고층까지 이어져, 건축물을 마치 하얀 포장지 속에 담긴 소중한 물건처럼 느끼게 합니다. 마치 알파벳 ‘X’자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건물을 보면 줄기에서 가지가 뻗어가듯이, 기초에서 기둥으로, 기둥에서 슬라브로 구조가 한층 한층 뻗어나가는 것을 바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지영 건축사는 “구조기술사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중 기둥을 가새로 만들면 개방감은 확보하면서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거라는 아이디어를 얻었다”면서 “보통 사람들도 이해하기 쉬운 건축을 지향한다. 건축물의 안전과 내부 공간 확보를 위해 만든 기둥이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쉬운 건축물의 상징이 돼 더욱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말했습니다.
더 브레이스 8층 (사진=라이프건축사사무소)
그러면서 한 건축사는 “누구나 건물을 처음 보면 왜 기둥을 X자로 했을까 하고 궁금증을 가지지만, 주어진 대지여건과 다른 요소들을 같이 고려하면 저 건물에는 X자 기둥이 최적화된 형태라고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심사를 맡은 조종수 심사위원(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교수)은 심사평을 통해 “이 작품은 건축의 본질을 되새기도록 한다.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닥·벽·천정이라는 단순한 논리는 이를 위한 구조로부터 출발함을 현대건축에서 간혹 간과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건축사는 건축의 본질적 질문을 가새 구조로 강렬하게 표현하며 이야기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지영 건축사의 일문일답
한지영 건축사 (라이프건축사사무소)
▶ 수상 축하드립니다. 수상작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십시오.
신촌에서 홍대로 넘어가는, 132제곱미터의 작은 대지에 자리 잡은 지하 2층·지상 8층 규모의 건물입니다. 좁고 높은 형태를 가지고 있어 횡력에 굉장히 취약했기 때문에 기둥 자체를 가새(Brace) 형태로 디자인해 입면에서 마치 가지처럼 뻗어 나가는 구조의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 건축설계를 시작하면서 가진 건축적 지향점이 있다면?
쉬운 건축, 일반인들이 보기에 이해하기 쉬운 건축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사들이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는데,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건축을 이해했을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 지향점을 이번 작품에 잘 반영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저 건물은 기둥을 왜 엑스(X)자로 했을까 생각했을 때, 좁고 높으니까 그 걸 견디기 위해 저렇게 교차하며 올라간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쉬운 건축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건물에서 사용하는 우편함, 주소판도 건물과 닮도록 디자인 했는데, 이런 것들이 일상 속에서 인지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근래 들어 관심을 두고 있거나 설계에 적용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컬러콘크리트’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제주도 프로젝트에 아마도 사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구조체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표현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출처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http://www.anc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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